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을 겨냥한 ‘종노릇’ 발언 여파로 ‘상생금융 시즌2’가 현실화하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은 추가 대책 마련에 돌입했고, 금융당국은 5대(KB·신한·하나·우리·NH농협) 금융그룹 회장들과 회동 준비에 나섰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지난 3일 소상공인·자영업자 30만명을 대상으로 1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 대책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내달부터 약 11만명의 개인사업자 대출 차주에게 665억원 규모의 이자 캐시백을 실시해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낮춘다는 내용이 골자다.
하나은행은 이외에도 금융취약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300억원 규모의 에너지 생활비를 지원하고, 통신비(20억원), 컨설팅 비용(15억원) 등도 제공하기로 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전 지원 대책 마련 이후 추가로 소상공인 등에 대한 지원을 검토 중인 터였는데, 시기적으로 (대통령 발언과) 맞았던 것 같다."며 "(대통령 발언으로 인해) 갑자기 준비한 것은 아니고, 상생금융 강화를 위해 내부적으로 계속 논의해 왔던 것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나금융이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다른 시중 금융지주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우리금융은 임종룡 회장 주재로 계열사 CEO(최고경영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회의를 열고 상생금융 추진 현황 점검과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저금리 대환 대출 공급 확대 방안과 소상공인 이자 면제 방안 등이 오갔다는 설명이다.
신한금융도 이날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의 금융부담을 경감하고, 취약차주 지원을 강화하는 '2024년도 소상공인·자영업자 상생금융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 밖에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 역시 대책회의를 열고 상생금융 강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에서도 움직임이 일고 있다. 당장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달 셋째 주 5대 금융지주 회장을 불러 모을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소상공인·취약계층 등에 대한 지원 방안이 다뤄질 것에 무게가 실린다.
이처럼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갑자기 분주해진 이유는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 발언 여파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께서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고금리 시대에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갈아치운 반면 서민들은 빚 상환 부담에 허덕이는 상황을 지적한 내용이다. 비록 현장에서 소상공인에게 들은 말을 전달하는 형식이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종노릇’이라는 거친 표현을 사용한 만큼 파장이 작지 않은 모습이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이달 1일 열린 21차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도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며 “우리나라 은행의 이런 독과점 시스템을 어떤 식으로든지 경쟁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며 올해 초 은행에 대해 '돈잔치'라고 비난했던 모습을 반복했다.
은행권은 올해 초 강도 높은 대통령 비판에 금리·수수료 인하와 연체율 감면, 원금 상환 지원, 채무 감면 등 1조1479억원 규모 지원 내용을 담은 상생금융 활성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연말을 앞두고 은행권을 둘러싼 대통령 발언이 다시 불거지면서 은행마다 이전부터 진행해 왔던 지원 규모를 늘리고 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후속 지원안을 마련할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은행권을 옥죄는 연이은 대통령 발언에 금융권 내부에서는 우려와 불만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상생금융 확대는 곧 저금리 대출 증가를 말하는데, 최근 정부와 당국에서 경계하던 가계대출 급증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며 “은행권에 요구되는 역할에 대한 방향성이 일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신아일보] 문룡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