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저원가성 핵심예금인 요구불예금은 올해 7월 감소세를 나타냈다. 수신금리가 상승하고 증시도 호조를 보이면서 대기하고 있던 자금이 각각 투자처로 흩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MMDA 포함) 잔액은 600조4492억원으로 전월(623조8731억원) 대비 23조4239억원(3.8%) 감소했다.
은행의 예금상품은 크게 요구불예금과 저축성예금으로 나뉜다. 이 중 요구불예금은 단기 자금으로 예금주가 언제든지 입금과 출금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품군이다. 직장인 급여통장이나 기업 자금거래 통장 등 흔히 볼 수 있는 입출금통장이 여기에 속한다.
요구불예금은 예금주에게 지급되는 금리가 연 0.1~1.0%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은행에선 낮은 원가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핵심예금’으로 통한다.
요구불예금은 투자 전 대기성 자금의 성격이 짙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만큼 시장 상황을 살펴 마땅한 자금 사용처를 찾기 전까지 돈을 임시로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잦은 이유에서다.
따라서 요구불예금의 감소는 그만큼 돈을 묵혀두지 않고 사용해야 할 곳이 많아졌다는 환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상당수 자금은 최근 상승세를 보이는 수신금리에 발맞춰 정기 예·적금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정기 예·적금 금리는 올 상반기만 해도 금융당국의 수신금리 경쟁 자제 권고 등의 영향으로 연 3%대 초중반을 나타냈지만, 하반기 들어 다시 슬금슬금 오르며 연 4%대 상품도 등장했다.
실제 지난달 말 5대 시중은행의 총 수신 잔액은 1924조362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1913조3578억원에서 11조48억원이 늘었다. 요구불예금 감소에도 정기예금과 적금이 증가한 결과다.
5대 은행의 지난달 정기예금 잔액은 832조9812억원으로 전월(822조2742억원) 대비 10조7070억원 불어났다. 정기적금 잔액 역시 같은 기간 40조841억원에서 41조2520억원으로 1조1679억원 늘었다.
인터넷전문은행 역시 요구불예금 성격인 파킹통장의 금리를 낮추고 정기예금 금리를 높이는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일례로 카카오뱅크는 지난달 27일 파킹통장인 ‘세이프박스’의 금리를 0.1%포인트(p) 낮추고, 반대로 정기예금의 금리는 12개월 미만 구간별로 0.1%p 상향 조정했다.
은행 통장에서 빠져나온 돈이 다른 업권으로 이동한 흐름도 읽힌다. 요구불예금은 20조원 넘게 줄었는데 정기 예·적금은 이보다 훨씬 적은 10조원가량만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내 증시가 전반적으로 호조를 보인 가운데 주식이나 채권 등 증권업계로 자금이 이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투자자예탁금은 56조2242억원으로 전월말(51조9553억원) 대비 4조2689억원(8.2%) 증가했다.
투자자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넣어두거나 주식을 판 뒤 찾지 않은 돈을 말한다. 증시 진입을 준비하는 대기성 자금이기 때문에 주식 투자 열기를 나타내는 지표로 쓰인다.
지난달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2.81%, 8.26% 상승했다. 월초 이후 시가총액은 코스피 55조8000억원, 코스닥이 36조7000억원 증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요구불예금 규모는 금리와 시장 상황에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