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체감 제로’ 포퓰리즘 정책 경쟁...오히려 2030세대 정치혐오감 확대
정치시민교육과 다양한 시스템 속에서 청년정치인 양성...정당 공천룰도 바꿔야
정치권이 내년 총선 판도를 바꿀 거대한 ‘스윙보터’ 2030세대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만 18~39세 유권자는 1494만명으로 전체 유권자 4396만명 가운데 34%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38.7%를 차지하는 4050세대에 이어 비중이 크다. 또 2030세대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69.3%로 다른 세대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가장 주목할 점은 이들 2030세대의 ‘무당층(無黨層)’ 비율이 최근에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대는 무당층이 절반(한국갤럽 기준)에 육박한다. 한국갤럽이 지난 5월 23~25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8~29세 중 무당층이라 답한 비율은 46%, 30대는 39%로 전체 평균(29%)보다 10%p 이상 높았다.
2030세대의 정치 외면은 지난 6월 지방선거 투표율 하락에서도 잘 드러난다. 2018년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20대(52.0→36.3%)와 30대(54.3→37.8%)는 두 자릿수 이상 하락했다. 지금 추세라면 내년 총선에서 2030세대 투표율이 50%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청년층, 이념보단 합리적인 정책 우선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쳐 지난해 대선을 치르기까지 정치에 대한 관심도와 참여율이 높았던 20·30대가 탈정치성향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서울 은평구 북가좌동에서 만난 대학생 정모씨(23)는 원래 보수 진영을 지지했지만, 현재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했다. 그는 “최근 정치권에서의 무의미한 싸움이 반복되고 피로감이 가중되었던 것이 가장 컸다”며 “민생을 걸고 공방을 벌인다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하는 정치권의 치졸한 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올해 1월에 취업을 해 상경한 사회초년생 김모씨(26)는 아예 정치에 무관심한 MZ세대다. 정치권이 내놓는 정책이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신뢰도 가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주식투자해서 차차 재산을 모아가는 것이 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청년정치크루 이동수 대표는 청년 무당층 확산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 정치의 문제점으로 꼽혔던 것 중에 하나가 진영 논리에 얽매이는 정쟁이었는데 이 시대 청년 같은 경우는 사실 진보냐 보수냐 딱 하나로 정의하기보단 그 시대, 그 상황에 맞춰서 본인들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가치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낸다”고 설명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여야의 극단적 대결과 정치권의 진영 간 양극화가 심해졌다”며 “2~30대가 정치 양극화에 환멸을 느끼면서 무당층도 늘어났다”고 진단했다.
◆ 총선 ‘세대교체론’ 급부상...수도권 2030세대 표심 주목
여야 정치권은 수도권 2030세대들의 표심이 내년 총선 승패를 가를 주요 변수로 보고 ‘천원의 아침밥’, ‘대학생 학자금 대출 이자 지원’과 2030세대에 끊임없는 구애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여야의 포퓰리즘 경쟁이 청년층의 정치 혐오를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총선 표심을 얻기 위해 내놓은 여야 포퓰리즘 정책이 결국은 미래세대인 자신들에게 빚으로 떠넘기는 것 아니냐며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윤석열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한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을 급히 거둬들인 것도 2030세대의 급격한 민심 이반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에서는 김기현 대표가 이례적으로 당내 기구인 청년정책네트워크 특별위원회(특위) 위원장을 맡아 각종 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최근 특위 1호 정책으로 토익성적 유효기간을 기존 2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발표한데 이어 예비군 3권 보장(학습권·이동권·생활권 보장)을 약속했다. 또 지난 26일에는 대학생 간담회를 통해 한미 대학생 연수 프로그램 확대를 약속하는 등 MZ세대를 위한 정책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청년정치인 오영환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계기로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용퇴론'을 비롯한 세대교체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젊은 피’라고 발탁했던 ‘86세대’가 50~60대 장년이 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청년들의 정치 참여 기회까지 가로막는 기득권이 됐다는 비판이 깔려있다. 민주당 내홍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강성지지층, 일명 ‘개딸’의 팬덤정치의 뒤엔 ‘86세대’의 적극적인 옹호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 친명계 김남국 의원의 코인 사태까지 악재가 겹친 민주당은 위기 탈출구로 수도권 중도층 확장과 2030세대 민심을 잡기 위해 쇄신책을 검토중이다. 민주당은 최근 공천TF를 통해 청년 후보자에 대한 단수 공천 우대를 추진하는 등 청년?여성?장애인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힘쓰겠다는 방침이다.
◆ 정치시민교육 통한 청년 정치인 육성 시스템 필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세대교체론'이 부상하고 있지만, 청년 정치가 갈 길은 여전히 멀다. 2030세대를 대표하는 청년 정치인들의 영향력은 아직 미미하고, 그 숫자도 ‘세력화’ 단계에도 못 미칠 수준이다. 청년 정치인들이 기성 정치 높은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선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폭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년차 직장인 김모씨(28)는 “청소년기 교육 과정에서 정치 시민교육을 끌어줘야 한다”며 “성인이 되어 세금을 내는 순간부터 정치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국민통합위원회 정회옥 청년정치특위 위원장(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미디어를 통해 정치를 배우면서 제대로 된 준비가 되지 않은 교육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며 “유럽이나 미국처럼 대학생위원회를 활성화해 정치에 대해서 꿈을 갖고 있는 정당 안에서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고 좀 더 청년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만들어 낼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