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표·현대제철·HDC·SPC 업종별 중대산업재해 발생
범죄혐의 입증 난항…경영계, 법개정 요구 한목소리
중대재해처벌법이 1월27일 시행 1년을 맞았다. 기업 오너, 대표들이 산업현장 안전에 신경을 쓰는 계기가 됐지만 사고 발생 건수는 크게 줄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의 기소사례는 아직 없다. 반면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된 최고경영자(CEO) 대부분은 중견·중소기업이다. <신아일보>는 중대재해법 시행 1년을 맞아 현 상황을 짚어보고 개선 방안을 제시한다. 첫 번째 시간은 ‘현실적 문제’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사고는?- 되려 늘어난 중대재해, 처벌은 없다
② 중기는?- 중대재해 대비 힘든 중소기업만 ‘쩔쩔’
③ 개선은?- 경영계, 법률 개정 목소리 높인다
삼표, 현대제철, HDC, SPC, 현대백화점 등 국내기업들이 ‘중대재해’란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관련 판결은 1건도 안 나왔다. 범죄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워 법이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예방 효과도 의문이다. 법 적용 대상인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오히려 늘었기 때문이다.
3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난해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는 256명으로 전년 대비 8명(3.2%) 늘었다.
중대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재해다. 지난해 1월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다.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 사업장에서 오히려 사망자가 늘면서 법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중대재해법에 적용받지 않는 50인 미만(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의 지난해 사망자는 388명으로 전년 435명 대비 47명(10.8%) 줄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전체 중대재해 사망자는 전년 683명보다 39명(5.7%) 감소했다.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망자 증가는 지난해 화재·폭발, 무너짐 등으로 2명 이상 사망한 대형 사고가 많이 발생한 원인이 컸다. 지난해 대형사고 사망자는 전년대비 18명 증가한 39명이다. 2배 증가다.
중대재해법 첫 사례는 제조업에 집중됐다.
삼표산업은 중대재해법 ‘입건 1호’ 오명을 썼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틀 만인 지난해 1월29일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양주석산에서 석재 채취를 위해 구멍 뚫는 작업을 하던 중 토사가 붕괴해 작업자 3명이 사망했다.
현대제철은 대기업 중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처음 받게 됐다. 지난해 3월5일 현대제철 예산공장에서는 근무하던 2차 하청업체 근로자 1명이 금형보수 작업 중 철골구조물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3월21일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기계 보수 하청업체 근로자가 천장 크레인을 정비하던 중 추락 방지용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병원에 이송됐지만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유통업계 1호 중대재해법 적용 기업이 됐다. 지난해 9월26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에서는 지하 1층에 대형 화제가 발생해 환경미화 직원 등 7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SPC그룹도 중대재해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15일 파리바게트 빵을 제조하는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는 근로자 1명이 소스 교반기에 몸이 끼어 숨졌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0월24일 항공기가 필리핀 세부공항에 착륙 도중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중대재해는 아니지만 사고에 대한 사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높아진 사회 경각심에도 건설업은 사망자 수 비중이 가장 컸다. 지난해 전체 사망자 644명을 업종별로 살펴보면 건설업이 341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중 지난해 10대 건설사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25명이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6명으로 가장 많았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중대재해법 시행 직전인 지난해 1월11일 시공 중이던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해 작업 중이던 근로자 6명이 사망했다. ‘e편한세상’, ‘아크로’ 브랜드로 알려진 DL이앤씨(옛 대림산업)은 지난해 5명의 중대재해 사망자가 발생해 HDC현대산업개발 뒤를 이었다.
SGC그룹의 SGC이테크건설은 지난해 10월21일 경기 안성시의 한 저온 물류창고 신축 공사 현장 4층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거푸집이 3층에서 내려 앉아 근로자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이외 지난해 건설사별 사망자는 현대건설 2명, 한화건설 1명, SK에코플랜트 2명, 롯데건설 1명, 두산건설 1명, CJ대한통운 1명, 현대엔지니어링 1명, 코오롱글로벌 1명, 삼성물산 1명, GS건설 1명 등이었다.
이러한 중대재해에도 처벌이 이뤄진 사례는 없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으로 입건된 229건의 사건 중 34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중 18건은 내사 종결 했다. 나머지 177건은 현재 내사 또는 수사 중이다. 검찰은 34건의 송치 사건 중 11건을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 결과가 나온 사건은 없다.
중대재해법 입건 1호인 삼표산업의 경우 검찰 수사가 7개월 넘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검찰 측은 “법리적 검토만 남았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법 개정 요구 목소리가 높은 경영계와 현 정부의 법안 개선 의지 등이 맞물리며 결론 내리는 데 속도내지 못하는 것으로 관측한다.
중대재해법 자체가 모호해 범죄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워 수사가 장기화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현재까지의 중대재해법 수사·기소사건을 보면 법을 집행하는 정부당국에서도 법 적용, 범죄혐의 입증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법 제정 당시 경영계가 끊임없이 문제 제기했던 법률의 모호성과 형사처벌의 과도성에 따른 부작용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아일보] 이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