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고물가 가중 '빨간불'…농식품부 "합리적 제도 개선 필요"
우유 원료가 되는 원유(原乳) 기본가격 결정 시한을 하루 남겨둔 가운데 유가공업계와 낙농가 간 극명한 입장차로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중재 역할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향후 결과에 따라 원유가격이 인상될 경우 우윳값은 또 다시 올라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 부담은 가중될 전망이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원유기본가격 협상이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원유기본가격은 매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하는 농축산물생산비조사 결과를 토대로 결정된다. 우유 생산비 증감률이 ±4% 이상이면 해당 연도에, ±4% 미만이면 2년마다 낙농가와 유업계가 협상을 통해 가격을 정한다.
통계청이 지난달 24일 발표한 농축산물생산비에서 지난해 기준 우유 생산비는 리터(ℓ)당 843원이다. 전년보다 4.2% 증가했다. 원유기본가격 산출식에 따라 올해 ℓ당 47~58원 범위에서 인상 요인이 작용한다.
낙농가와 유업계 간 원유가격 조정은 유제품 가격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이다. 흰우유와 바나나맛우유 등 가공유 원료가 되는 것이 바로 원유다. 원유가격 조정은 정부가 구제역으로 피해가 컸던 젖소농가의 소득보장을 위해 2013년부터 도입한 ‘원유가격 연동제’에 따른 것이다. 시장상황이나 수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닌, 원유 생산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체계다.
원유기본가격은 통계청 발표 후 1개월 내 협상을 마치는 게 관례다. 이에 따라 이번 조정 마감시한은 6월24일이다. 다만 의무는 아니다. 가장 최근인 2020년에는 5월 말 1차 위원회를 시작으로 협상이 8차까지 이어진 적이 있다.
올해의 경우 원유기본가격 결정을 위한 위원회 구성부터 난항이다. 낙농가 측은 협상위원 추천을 마쳤으나 유업계는 대응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과 연관이 깊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원유가격을 음용유·가공유로 차등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는 생산비 연동제로 용도 구분 없이 쿼터 내 생산·납품하는 원유에 음용유 가격인 ℓ당 1100원(인센티브 포함)을 적용하고 있다. 차등가격제는 흰우유를 비롯한 음용유는 지금 수준을 유지하고, 가공유는 900원 수준으로 내리면서 정부가 일부 차액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개편하는 방향이다.
유업계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에 긍정적이지만 낙농가 반대로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협상위원 추천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업계 한 관계자는 “원유는 물론 부자재와 인건비, 물류비 등 비용 압박이 갈수록 큰 상황에서 차등가격제 도입 속도는 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낙농가 눈치만 보고 진척이 없다보니 협상에 응하지 않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낙농가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원유가격 연동제를 폐지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납유 거부 등 강경투쟁도 예고했다.
낙농가 대표 생산자단체인 한국낙농육우협회 이승호 회장은 최근 국회 앞 농성장에서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을 만나 “사료값 폭등, 원유 감산기조로 낙농가 사육기반은 붕괴되고 있다”며 “낙농기반유지를 위한 대책을 만들어야 할 정부가 원유가격 연동제를 강제로 폐지하면서 문제가 촉발된 것”이라고 날선 비판을 했다.
농식품부는 난감한 상황이다. 새 정부 들어 물가안정에 총력을 쏟으면서 이전 정부가 추진한 차등가격제 도입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낙농가가 납유를 거부하면 원유 공급 차질로 우유값이 오를 소지가 크다. 차등가격제 도입이 차일피일 미뤄져 생산비 연동제가 지속돼도 우유가격은 오르게 된다.
당장 올해 원유 기본가격이 47~58원 범위 내에서 인상되면 시중에 판매되는 우유가격은 최대 500원가량 인상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울우유·매일유업·남양유업 등 유업계 빅(Big)3 모두 지난해 8월 원유값이 ℓ당 21원 오른 직후 그 해 10월 우유 가격을 인상했다.
유제품 가격인상은 빵과 커피, 아이스크림 등 우유 사용비중이 높은 다른 식료품까지 가격이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으로 또 다시 이어질 수 있다.
농식품부는 양측 협상에 개입할 순 없지만 위축된 낙농산업 발전과 지속가능한 시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합리적인 낙농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적정한 가격과 물량 조정이 관건”이라며 “(양측이 타협점을 만들 경우) 생산자에게 애초 제시했던 것보다 진일보한 내용을 제안하는 등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