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증권이 연일 증권가의 화제다. 색다른 제목과 디자인을 적용한 리서치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어서다. 올해 1분기에 발간한 보고서만 봐도 특징이 확연히 부각된다. △카테고리 킬러로 성장한다(유통·화장품) △제약 바이오가 왜 이럴까(제약·바이오) △펴고 채우고 당기고(미용) △지금 우리 교육은(교육) 등 기존 보고서와 다른 제목으로 시선을 끌고 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인사돌 광고)라든지, 미녀배우 박민영씨가 출연해 장안의 화제였던 '김 비서가 왜 이럴까'(드라마 제목) 같은 여러 아이템이 연상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또한 보고서 주제에 맞춰 표지에 드라마를 패러디하거나 애니메이션으로 친숙하고 차별화된 디자인을 적용한다. 보고서 주제에 맞는 이미지로 투자자에게 각인시키고자 지난해 말 디자이너 겸 유튜브 PD를 영입하기까지 했다는 설이 나돌지만, 아직 교보증권 주변에서 떠도는 이야기 수준이니 일단 차치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은 따로 있다. 교보증권은 경제전략 등 보고서 발간시 넷플릭스의 다양한 영화를 기초로 창의적인 감성을 입혀 MZ세대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계획으로 알려진다.
이런 넷플릭스 스타일 경영을 보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바로 교보증권과 교보생명 등 다양한 금융기업들의 씨앗을 뿌린 고 신용호 창업회장의 '정보 철학'이다. 그는 대한교육보험(현재의 교보생명)을 일궈 한국의 교육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듣는 한편, 한국 대표 서점인 교보문고를 세운 이로도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도 입지가 가장 좋은 금싸라기 땅에 돈이 되지 않는 서점을 세우면서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들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쓰라. 한곳에 오래 서서 책을 읽어도, 그냥 두라. 책을 이것저것 빼보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주지 않도록 하라. 책을 훔쳐 가더라도 망신주지 말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좋은 말로 타이르도록 하라" 등 운영방침도 세웠다.
책 판매에 집중하지 않고 누구나 편하게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한 그 정신이, 특히 금융지식과 투자경험이 아직 부족한 MZ세대에게도 편하게 다가서는 교보증권 보고서로 재해석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용비어천가일까? 글로벌 경제 난국 속에 일자리는 불안하고, 부동산값은 너무 올라 증권 아니면 돌파구가 없어서 증시에 사람이 몰린 바 있다. 그런 이들에게 잠시나마 편안함과 재미를 찾을 수 있게 배려하는 교보증권의 넷플릭스 스타일 보고서가 가진 의미는 심오하다.
다만 이렇게 되니 작은 문제가 더 근심스럽게 느껴진다.
금감원은 이번에 교보증권에 거액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자본시장법 등에 따르면 금융투자업자는 고유재산 운용업무와 집합투자재산 운용업무 간 임원 겸직을 해서는 안 된다. '이해상충(이해충돌)'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보증권은 2016년 전문사모 집합투자업 등록을 신청 후 겸직 처리를 했다. 2018년에는 투자자의 수가 1명인 집합투자기구의 해지를 회피할 목적으로 자사 직원에게 이를 판매하는 꼼수도 썼다.
정보를 예쁘고 맛깔나게 담아서 진심으로, 그것도 아주 헐하거나 무상으로 한국인 모두에게 제공하는 게 교보증권 더 나아가 신용호 창업회장의 정신임은 이번 넷플릭스 스타일 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 진의를 의심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소비자와 자사 주식에 투자하는 주주들에게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고 또 그 바탕에서 사심 없이 일처리를 한다는 점도 앞으로 보여주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