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에 당면해 흔쾌히 사심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자세를 초개와 같이 던진다고 표현한다. 명분이나 도리보다 잇속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는 쓰일 일이 많이 줄어서, 사실상 장렬하다는 표현만큼이나 사장되어 가는 단어다.
그런데 주식시장의 큰 손인 국민연금공단의 행보를 보면서 근래 이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참사인 광주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국민연금의 향후 움직임에 관심을 둔 이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HDC현산 지분율 11.67→9.73%로 하락’이라는 뉴스가 도하 언론을 장식하고 있으니, 이런 일말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11일 붕괴사고가 일어난 이래 HDC현대산업개발에 사회적 비판이 집중되면서 사회면과 정치, 산업면을 온통 이 회사 이야기가 수놓고 있다. 그런데 26일에는 돌연 HDC현대산업개발이 국민연금의 지분 축소 소식에 장 중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금융면 기사가 떠올랐다. 국민연금은 지난 4일부터 18일까지 44만4345주를 장내에서 매수했고 172만1858주를 매도했다고 증권업계는 전한다.
당연히 연쇄적인 주가 타격 및 사회 일각의 탄식이 뒤따른다. 앞장서서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하는 것까지야 언감생심이라 쳐도, HDC현대산업개발이 오는 3월 주주총회를 열 때만큼은 국민연금이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겠느냐는 추정을 내놓는 이들이 있었던 것. HDC산업개발은 작년 철거 사고로 인명사고를 낸 데 이어 이번 참사를 빚었다.
그런데 대거 매도라니, 허를 찌르는 행보이자 기대감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조치라는 짠 점수표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일반투자'는 '경영참여' 단계보다는 강도가 낮지만 주주활동 수준을 높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단계다. 임원 등을 자르는 큰 칼을 쓰겠다고 선언해 둔 셈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주식을 상당 부분 팔고 나서도 잘못된 점을 준엄히 논고할 수 있겠는지, 사람들은 사실상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역할론은 물 건너 갔다고 한탄하고 있다.
물론 국민들의 노후 준비를 대비하는 금고지기로서 눈 딱 감고 조치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같이 할 것이면 일반투자 조치를 공표한 건 립서비스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말인가? 그렇게 초개와 같이 던지기에는 일반투자라는 명분을 내걸었던 점이 무거울 정도로 맘에 걸리고, 간판 앞 '국민'이라는 이름도 너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