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이 26일 오전 크게 약세를 보인 데에는 국민연금이 한몫을 했다는 이야기가 증권가에 나돌아 관심이 집중됐다. 이날 오전 10시20분경에는 전장 대비 4.75%(700원) 하락한 1만4050원에으로 밀렸다(이날 종가 1만4400원, 27일 오후 10시10분 시가 1만4300원.).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 11일 광주 아파트 붕괴 이후, 기업 가치 하락 여파로 9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다만 지난 24일 상승 전환한 뒤 25일에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 와중에 국민연금이 HDC현대산업개발 지분을 축소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HDC현대산업개발 주가 머리는 방향을 돌렸다.
물론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을 맡은 아파트가 붕괴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자금 여력에 문제가 생길(만기도래 유동화증권 처리의 어려움) 수 있다는 우려를 일각에서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주가가 떨어지자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을 매도한 것은 자연스럽다는 평도 나온다.
◇주가 하락 유발+발 빼놓고 준엄한 질타? '이율배반 논란'에 사실상 어려워
하지만 각도를 달리 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18일 현재 국민연금은 HDC현대산업개발 주식 641만4813주(지분율 9.73%)를 보유했는데, 이는 지난해 말 769만2326주(11.67%)에서 127만7513주(1.94%) 줄어든 것으로 알려진다. 시장 출렁임을 유발하기 충분한 양이다. 자칫 회사를 마취시키는 상황이 될 여지가 있다. 이는 다시 아래의 두번째 문제와 합쳐져 더 큰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국민연금이 올해부터 주주대표소송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가 시민사회계에는 있었다. '11.67%를 보유하는 큰 손으로서' HDC 현대산업개발에 대해 모종의 질책을 준엄히 내려줄 것이라는 스토리였다. HDC산업개발은 작년 철거 사고로 인명사고를 낸 데 이어, 또 이번 사고를 냈다.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에 나서려면 경영권에 참여하기 위해 소송 대상 기업의 지분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나 경영참여로 설정해야 하는데, 국민연금은 작년 11월 국민연금은 HDC현대산업개발의 보유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한 상태여서, 실제 주주권 행사를 하는데 제약은 없다는 것.
즉,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 어떤 조치를 취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이를 촉구하는 전망 내지 움직임이 있었다. 24일 참여연대와 한국노총,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등이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연금이 이사회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몇 개 기업들의 대주주로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이 같은 요청 이전에 (중간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발을 뺀 셈이다. 투자자(연금 납입자)들을 위해 손절을 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 경우 주주총회에서의 문제점 공격은 사실상 어렵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단맛이어도 스스로의 행보로 장기 손실을 자처했다는 박한 평가도 뒤따른다.
앞서 회견에 나선 단체들은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도입했으나 현산 등의 주주이자 국민 노후 대비자금의 집사로서 책임 있는 활동은 전무했다"면서 "국민연금이 투자한 이들 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연금의 손실도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는데 특히 뒷 부분은 소탐대실 논리와 연결된다.
◇한편에선 대한항공 발 걸면서 다른 쪽에선 투자, 이율배반 논란 전례도
국민연금의 이율배반 우려는 낯설지 않다.
지난해 1월,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임시 주총에서 강한 태클을 시도했는데, 이에 실패한 데다 이율배반 행보로 빈축을 샀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목적의 발행 주식 총수 확대를 위해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했다.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던졌지만 69.98%로 정관 변경 건이 가결됐다.
또 대한항공은 당초 2조5000억원 수준의 유상증자를 진행코자 했으나 결국 40%가량 증액한 3조3100억원으로 결정했다.
유증 이후에 주가가 보통 하락하지만, 이 경우는 호재로 시장에 인식됐었다. 정부 당국도 두 항공사의 결합 등 전체 그림에 긍정적이었다고 대체로 본다. 그런데 이에 국민연금이 방해를 하고 나서는 셈이 돼 모양이 좀 이상해졌다는 소리가 산업계를 중심으로 나돌았었다.
한편 국민연금은 이상한 행보를 하나 더 내놓는다. 조원태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직에 연임하면 기업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기조에서 반대 방향을 잡은 셈인데, 2021년 연초 대한항공 주식 보유량을 기존 지분 8.11%에서 13.87%로 5%p 이상 늘렸다는 게 나중에 알려져 의아함을 자아냈다.
기업 가치가 훼손된다며 밴드웨곤을 출발시킨 뒤, 반대쪽에서 이삭줍기를 하듯 주식을 늘린 건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이 일부 있었다.
물론 국민연금이 기금운용위원회와 수탁위원회로 두 기둥이 독립적으로 판단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다고 볼 여지가 강하다. 기금운용위는 실제 어느 기업에 투자할지를 결정하고 수탁위는 기업 지배구조 등에 대해 논하는 기구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조율은 있어야 한다는 재반론도 없지 않다.
KAL과 현산 이슈를 겪은 것을 전화위복 삼아 스튜어드십 골조를 튼튼히 올리면 좋을 것이라는 당부가 그래서 나온다. 한 경제학 연구자는 "어떤 식으로든 확고히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라면서 "기준 없이 허물어져서 판단하면 자의성 문제가 생긴다"고 우려했다. 한 교수는 "연금사회주의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경영에 지적하는 판단 기준을 ESG 등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세우면 이율배반 판단이라는 현상은 자연히 해소, 예방될 것이다. 연금을 움직이는 기금운용위원회 독립성 보장도 그런 점에서 매번 강조해 논의해도 과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