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약한 지역 금융권, 자금 유출·공공성 훼손 우려
종합지급결제사업자 도입 근거를 마련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두고 지방은행권의 반발이 거세다. 대형 시중은행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지방은행들은 대형 핀테크 업권에 자금줄을 내 줄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전문가들은 지역 경제를 지원하고 지탱하는 지방은행의 공적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며, 이를 고려한 대한 대책 마련과 개정안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조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11일 전자금융거래법(이하 전금법) 개정안이 가진 문제점을 비판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작년 11월 윤관석 국회 정무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전금법 개정안은 마이페이먼트(지급지시 전달업) 및 종합지급결제 사업자 도입, 각종 페이의 후불 결제 허용 등을 내용으로 한다. 금융권에서는 사실상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대형 디지털사가 여신 등 금융권 본연의 업무를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규제 완화를 통해 핀테크 산업을 키우겠다는 게 개정안의 취지지만, 금융노조는 이번 개정안이 '동일기능·동일규제 원칙'을 지키지 않은 빅테크 특혜 법안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대형 시중은행의 경우 전금법이 개정되더라도 당장 빅테크 업권이 대형은행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대다수다.
A 은행 관계자는 "전금법 개정안으로 빅테크 업체들이 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되면 예금고객이 이탈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리스크기는 하지만, 대형 시중은행의 경우 영업망이 넓고 핀테크 업체가 할 수 있는 대출 영업도 소액 신용대출 등 한정적이어서 당장의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B 은행 관계자도 "시중은행의 경우 전문적인 실사 인력 등이 필요한 고도화된 기업 대출 등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전통 금융업을 영위하던 곳이 아닌 핀테크 업체의 경우 이런 노하우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방은행이다. 대규모 민간자금이 빅테크 업체로 옮겨진다면 지방은행의 자금 유출이 가속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은행의 경우 지역 사회 안정 및 지역경제 활성화 역할도 하고 있지만, 빅테크 업체들로 자금이 유출된다면 지방은행들의 순이익이 줄어들며 지역 금융기관의 역할이 퇴색될 수 있다.
지방은행들의 순이익 감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지방은행의 당기순이익은 1조원으로 전년 대비 1000억원 줄어들었다. 1년 새 10%가량 줄어든 것이다. 이어 점포 수도 같은 기간 933곳에서 889곳으로 44곳 줄었다. 부산은행이 점포를 19곳 줄였고 경남은행이 13곳, 대구은행이 9곳을 각각 폐쇄했다. 여기에 전금법 개정안까지 통과된다면 지방은행의 수익성 악화를 더욱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C 지방은행 관계자는 "이번 전금법 개정안으로 종합지급결제사업자 라이센스가 도입되면 대규모 민간자금이 빅테크 업체로 이동되며, 이 중 지역 자금이 포함돼 지역 자금 유출을 더욱 가속할 것"이라며 "이는 지역 금융기관의 자금 조달을 악화시켜 지역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에 대한 원활한 자금공급에 차질을 초래할 위험이 있고, 사회공헌사업 등 지역 재투자 활동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민섭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위원도 "오픈뱅킹이 처음 도입됐을 때 토스 같은 핀테크 업체들에 사업을 다 뺏기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결국 전국 영업망을 확보한 대형은행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며 "하지만 시중은행들과는 달리 지방은행의 경우 공공성이 위축될 우려가 있어, 소외된 지역 금융의 경쟁력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금법 개정안에서도 지방 금융이 가진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D 은행 관계자는 "지역 화폐처럼 핀테크를 통해 그 돈이 지역 내 재투자가 이뤄져, 공공성까지도 확보될 수 있도록 전자금융거래법이 개정됐어야 했다"며 "현재 윤 의원 안은 빅테크 사업 활성화의 목적만 있고 구체적인 내용이 너무 부실해 아쉬운 점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