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 재건축' 책임공방 과열… '노동·민심' 저멀리
학원가 포진 영등포도 관심… 공시생 민심 어디로
"가리봉동 도시 개발, 누가 안 한 건가. 그 당시 서울시장이 누군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
"박영선 (당시) 국회의원께서 열심히 안 하신 것 아닌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지난 29일 밤 방송 토론에 나선 두 서울시장 보궐서거 후보는 남서부 재건축을 두고 남 탓 공방에 나섰다.
박 후보는 오 후보를 향해 "(오 후보가 서울시장일 때) 세 번이나 면담 요청을 했는데 거절했다"며 "가리봉동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졌느냐, 제가 애가 닳았는데, 이제 와서 '국회의원이 열심히 안 해서'라니,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후보는 이에 "서울시가 구획 지정만 하는 것이고, 동네마다 사정이 다르다"며 "700군데나 되는 시행 지역을 어떻게 다 만나뵙고 일을 하느냐"고 반박했다.
두 후보의 설전은 노동자의 도시 금천과 구로, 영등포가 여전히 하대 받고 있다는 것과 재건축에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민의힘이 서남권 진보 진영의 행정구 세 곳을 흔들고 있는 가운데 유권자 선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천, 진보세 강한데 보수 후보 '미워도 또 한 번'… 이번 선택은
국회의원 선거구에 금천구가 단독으로 생긴 건 15대 총선부터다. 현재까지 이곳을 기반으로 재선을 연임한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목희 전 민주통합당 의원이 이곳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18대를 건너뛴 17대와 19대 때다.
다만 금천은 전통적으로 민주당계 정당 지지 성향이 강한 행정구 중 하나다. 일례로 지난 2011년 오 후보 서울시장 당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를 보면 20.2%로, 서울시 투표율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당시 지역 내 민주당 지지층은 투표 자체를 부결시키기 위해 기표소에 가지 않을 정도다. 호남 지방에서 올라온 주민이 많고, 낙후된 지역인 만큼 기득권층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란 게 통설이다.
그럼에도 총선이나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보면 보수 정당 후보가 종종 당선됐다. 옆 동네 영등포와 구로보단 진보 성향이 강하지 않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후 보수권은 완전히 몰락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이번 서울시장 보선에서도 오 후보는 진보층에 다소 친근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다녀간 뒤에나 금천을 방문했다.
금천구의 상당수 구역은 전형적인 주택가다. 하지만 대부분이 난개발로 건축돼 거주민이 인근 경기도 광명시나 안양시로 많이 떠나는 추세다. 뉴타운(신도시)은 선거 때마다 이곳을 노리는 정치권의 단골 공약이었지만, 여전히 깜깜한 실정이다.
오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대표 개발 공약으로 내세운 '서남권 경전철(목동·신림·서부·난곡선)' 사업을 부각하며 서울 시내 교통 양극화에 박탈감을 느끼는 비강남 민심을 자극하고 나섰다.
오 후보는 금천구 시흥사거리 유세 당시 "난곡선을 당선 즉시 연장해달라는 게 제일 큰 민원이라고 알고 있다"며 "꼭 그렇게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덧붙여 "재개발·재건축 사업도 반드시 진척시키겠다"며 "서울시장은 비강남을 발전시키는 것이 제일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부각하고 나섰다. 상대적으로 당세가 취약한 서남권에 도심 개발을 내세우면서 민심 흔들기에 나선 것이다.
◇박영선·이인영 장관 만든 구로… 이번 선거서도 '애정표현' 할까
구로구는 민주화 이후 치른 14대 총선부터 진보 진영이 사실상 선거구를 털어가고 있다. 14대 총선 때까진 구로 갑·을·병으로 나뉘었는데, 15대 총선 때부터 금천구 분구로 인해 갑·을 두 지역으로 선거구가 감소했다.
갑·을 지역 두 명의 국회의원은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으로 활동했거나 활동 중이다. 갑 지역의 경우 16·18대 총선을 제외하고는 이인영 현 통일부 장관을 17·19·20·21대 국회로 입성시켰다.
을 지역은 현재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박 후보의 텃밭이다. 박 후보는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구로는 18대 총선부터 박 후보를 내리 세 번이나 밀어줬고, 덕분에 박 후보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는 평가다. 특히 박 후보가 관리했던 구로동 일대는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악명이 높았던 구로공단이 있던 곳이다. 이곳이 노동운동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박 후보는 자연스레 노동권 대변을 맡게 됐다.
박 후보와 구로는 여전히 애증의 관계다. 박 후보 별명은 지역구 이름을 따서 '구로 박'이라고 잘 알려졌고, '구로마검'이란 별명도 있다. 상대 정당을 향해 상당히 강한 공격과 반박을 서슴치 않지만, 상술한 각종 논란 때문에 민주당에 흠집을 낸 적도 있기 때문에 이런 별칭이 붙었다.
박 후보는 지난 25일 구로에서 유세 출정식을 열고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현재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던 윤건영 의원이 지역구를 물려받아 표심을 읍소하고 있다.
◇영등포, 동-서 전쟁… 2030 고시생 민심 어디로
영등포는 구민 정체감이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난 도시다. 서울 서남부의 터줏대감이기에 옛부터 여야 각축적인 일어나는 곳이다. 특히 갑 지역의 경우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전설적 경력을 가진 고 유진산 전 의원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유 전 의원은 국회의원 다선 목록에서 공동 8위에 이름을 올렸는데, 야당 의원으로서 내리 7선에 성공했다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다.
영등포 정치 성향은 사실상 여의도 대 나머지로 요약할 수 있다. 신길·도림·대림동 등에선 민주당계 정당 몰표가 쏟아지고, 여의도동은 보수 정당 지지로 상쇄하면서 선거 땜다 접전 국면을 보이고 있다. 중국인·화교 등이 밀집한 서쪽과 방송인·정치인·금융인 등이 많은 동쪽의 대치다.
이 때문인지 현재까지 스물한 번의 총선 결과를 보면 갑 지역에선 보수권이 10번 석권했고, 나머진 진보권과 군소 단체가 가져간 바 있다. 을 지역에선 보수권이 11번을 차지했고, 나머진 진보 진영 등이 빼앗으면서 쟁탈전이 치열하다.
이번 선거 관건은 서쪽 표심이다. 동쪽 민심은 사실상 보수권에 공고하기 때문에 서쪽 표심에 대한 민주당의 사수와 국민의힘의 흔들기가 치열하다.
공무원 시험 전문 학원 등 또한 많아 20·30대 표심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공산이 크다. 학원가 일대 자취생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주요 유권자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민심 공분이 큰 상황에서 정부가 말단 공무원까지 재산등록을 의무화시키겠다고 나서면서 엄한 곳에 불똥이 튀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직사회 불만도 커지는 분위기라는 점에서 공무원 준비생의 표심은 어디로 모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아일보] 석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