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교란 행위 방지 위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조치 무색
LH, 관련자 직무 배제 후 자체 감사…'업무 연관성' 여부 조사
문재인 정부 주거정책의 상징인 '수도권 3기 신도시'에서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여섯 번째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광명·시흥지구에서 LH 직원과 가족들이 100억원대 토지를 대출까지 받아 분할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정부가 시장 교란 행위를 막기 위해 광명·시흥지구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데다 LH가 주거 안정 정책을 최일선에서 수행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파문이 일파만파 번지는 분위기다. LH는 즉각 관련자들을 직무 배제하고, 이번 사건의 업무 연관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자체 감사에 돌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경기도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에 2만3000여㎡ 토지를 사전 매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광명·시흥 신도시는 정부가 지난달 4일 발표한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에 포함된 신규 공공주택지구 3곳 중 한 곳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4일 수도권 3기 신도시 중 여섯 번째로 광명시흥지구를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광명시 광명·옥길·노은사·가학동과 시흥시 과림·무지내·금이동 일원 1271만㎡에 총 7만 세대를 공급할 계획이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광명·시흥지구에 대한 신도시 지정 발표 전후에 LH 직원들이 투기 목적으로 토지를 샀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당 필지의 등기부등본과 토지대장, LH 직원 명단을 대조한 결과,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LH 임직원과 배우자 등 10여명이 시흥시 과림동과 무지내동 일원 10개 필지 토지 약 2만3028㎡ 지분을 나눠 매입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이들 토지의 매입가격이 100억원대에 달하고, 금융기관 대출액만 약 58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LH 직원과 가족들이 공동으로 소유권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이런 행위가 공직자윤리법상 이해충돌 방지의무 위반 및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 위반 가능성이 높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고, LH에 자체 감사를 요구했다.
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이번 감사청구를 통해 해당 지역뿐 아니라 3기 신도시 전체에서 국토부 공무원 및 LH 공사 직원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 취득 일자 및 취득 경위 등을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LH는 이번 사건 관련자로 확인된 직원 12명을 직무 배제하고 자체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의 주안점은 관련자들의 업무와 이번 사건 간 연관이 있느냐다.
LH 관계자는 "핵심은 업무 연관성이 있는 직원이 이런 행위를 했느냐 여부지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만큼 일단 직무 배제를 했다"며 "민변과 참여연대도 고발을 한 게 아니라 감사청구를 했기 때문에 업무 연관성을 확인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토부는 광명·시흥지구에 대한 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한 직후 이 지역을 2년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토지의 투기적 거래가 성행하거나 지가가 급등하는 지역 또는 그런 우려가 있는 지역에 대해 중앙 또는 시·도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
정부는 주거 안정이라는 문재인 정부 최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근 대규모 주택 공급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주택 공급 과정에서 시장이 과열되는 역효과를 방지하기 위한 보조 장치 성격으로 이뤄졌다.
LH 사장을 역임한 뒤 작년 12월 취임한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 건설·부동산 분야 협회들과 함께한 주택 공급 관련 간담회에서 "광명·시흥 등 약 10만호의 신규 공공택지 후보지를 발표한 데 이어, 이번 대책의 후속 조치가 구체화되면 매수심리 진정 및 가격안정 효과도 더욱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광명·시흥지구 등에 대한 주택 공급 계획을 논의한 지난달 24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최대한 엄중 조치해 나가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제도 개선도 조속히 강구하기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