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전 부사장과 깊은 인연…그룹 복귀 바로미터 해석
한진그룹 송현동 부지 매각을 두고 재계 안팎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한진그룹은 조원태 회장에 반기를 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포함한 연합세력에 맞서기 위해 송현동 부지와 제주호텔 등을 매각하는 카드를 꺼냈다. 이들 부지와 건물 등은 조 전 부사장이 관여한 곳이기 때문에 실제 매각 여부는 조 회장과 조 부사장 측의 세력다툼에서 특별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전망이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송현동 부지와 왕산마리나 등을 연내 매각하기 위해 매각 주간사 선정 작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한진그룹은 경영 개선책의 일환으로 지난 6일과 7일 대한항공과 한진칼 이사회를 연이어 열고, 대한항공이 소유한 송현동 부지, 왕산레저개발 지분과 함께 칼호텔네트워크가 소유한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부지를 매각한다는 내용의 호텔·레저 사업 전면 구조 개편을 결정했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는 대한항공이 지난 2008년 엣 주한미국대사관 직원 숙소였던 경복궁 옆 부지 3만6642제곱미터(㎡)를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원에 사들여 호텔을 포함한 복합문화단지 신축을 추진한 곳이다.
부지매입 당시 영빈관은 한옥 형태로 만들고, 140여실은 별도의 최고급 호텔을 지을 것으로 계획했지만, 부지에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 등 3개 학교가 인접해 ‘학교 반경 200미터(m) 이내에 관광호텔을 세울 수 없다’는 관련법에 막혔다.
지난 2010년에는 서울시중부교육청이 학습권 침해를 이유로 호텔 신축 계획을 불허하자 행정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이후 2013년 당시 청와대가 조양호 회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추진됐지만, 2014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해 사실상 호텔 건축 계획은 무산됐다.
대한항공은 지난 2015년 호텔을 제외한 복합문화센터인 ‘K익스피리언스’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사실상 방치됐다.
송현동 부지의 가치는 현재 약 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송현동 부지는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관심이 높지만,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해당해 건물을 세울 때 문화재위원회 심의가 있어야 하는 등 개발이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실제 매수자가 나타날지 미지수다.
10년 이상 방치된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부지도 매각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제주 파라다이스호텔은 과거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겨울 별장으로 쓰였다. 이후 4·19 혁명이 일어난 뒤 정부 소유 호텔이 됐다가 지난 1970년 8월 파라다이스그룹이 인수해 ‘하니문하우스호텔’로 바뀌었다. 지난 1980년대 말에는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쳐 1990년 파라다이스호텔로 개장했지만, 특1급호텔이면서 객실이 56실밖에 되지 않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힘들어 경영 적자가 누적됐다.
한진그룹은 지난 2008년 파라다이스그룹으로부터 파라다이스호텔을 520억원에 인수했다.
한진그룹은 파라다이스호텔 인수 당시 리모델링을 거쳐 인접한 서귀포칼호텔과 연계해 고급 휴양시설로 개발하려 했지만, 그룹 내 투자 우선순위에 밀리고, 외부 투자자 유치가 여의치 않아 그동안 방치했다.
지리적·환경적 이점이나 주변 휴양시설 개발 수익 등을 고려해 일부 사모펀드 등이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매각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송현동 부지와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부지 모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물러나기 전 주도했던 호텔 사업과 연관이 깊은 자산이다.
또 다른 매각 대상인 왕산레저개발은 대한항공이 지난 2011년 왕산마리나 조성사업을 위해 자본금 60억원을 전액 출자해 설립된 회사다. 조 전 부사장은 왕산레저개발 대표를 맡았으나,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왕산마리나는 왕산레저개발 1333억원, 인천시 167억원을 합한 15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지구 일대 9만8604㎡ 공유수면을 매립해 해상 266척, 육상 34척 등 총 300척의 요트를 계류할 수 있는 항만시설로 조성됐다. 지난 2012년 8월 착공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 요트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다만, 왕산레저개발은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대한항공이 유상증자로 이를 메우고 있는 상황이다. 왕산레저개발이 매물로 나와도 인수 의향자가 나타날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이에 따라 재계 안팎에서는 이들 부지의 매각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부지 매각을 통해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보다 호텔·레저 사업에 애착을 보여 온 조 전 부사장의 흔적을 없애고, 그의 그룹 복귀를 막으려는 의미가 더 크다는 해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