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26일 자치와 분권, 지역 간 균형발전 등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지향할 바를 담은 개헌안을 발의했다. 이 개헌안에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지방에 있음을 밝히고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국토부 연구보고서 따르면 향후 30년 내에 대한민국 시·군·구의 37%인 84개, 전국 읍·면·동의 40%인 1,383개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처럼 지방분권 강화는 서울과 수도권 대 지방, 효율 대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의 50% 이상이 몰리면서 지방은 낙후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개헌안에는 대한민국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지방의 분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표가 담겨져 있다.
지방분권이란 국가의 통치 권력을 중앙정부에만 집중시키지 않고 각 기방자치단체에 나누어 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는 1991년 부활한 이래 아직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지휘하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눈치를 봐야하는 형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번 개헌안에는 지역의 독창성을 살리고자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이 강화됐다. 또한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치세의 종목과 세율, 징수방법에 관한 조례 제정의 권한을 지방에 부여했다. 실질적인 지방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가 강화됐고, 지방정부의 부패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주민소환제도, 주민투표, 주민발안을 헌법에 규정했다.
일찍이 지방분권이 포함된 다층적 거버넌스가 정착된 유럽연합은 유로존 사태와 브렉시트 이후 정체성 회복과 경제발전의 기회를 다층적 거버넌스 강화에서 찾고 있다. 다층적 거버넌스는 회원국 정부간, 하위정부(지방정부, 도시)간 수평적 권한을 갖고 공동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방 도시들간 연합이 활성화되고 있다. 지방 도시들 간 연합전략은 오랫동안 관심밖에 있었던 중소도시들로의 경제 재생을 가능케 한다. 또한 핵심 도시들로부터 선택된 중소도시들로 경제 및 다른 기능들이 흘러가도록 설계되고 있는 추세이다. 다양하고 통합된 정보를 확보한 도시간 협력 참여 도시들은 사회, 환경, 공공조달 시장에서 좀 더 자율성을 갖고 구매를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도시들 간의 정책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수준의 행위자들은 정책 형성에서 요구되는 자원을 유통, 동원하고 이 안에서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유럽연합의 독특한 방식인 다층적 거버넌스의 특징은 초국가 기구 및 회원국 이외에도 유럽 혹은 국가 수준의 사적행위자와 지방정부가 수평적으로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경제위기 이후 역내에서조차 경제 행위자들을 적절하게 규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즉, 유로존 사태 이후 유럽연합의 정책결정 권한이 초국적 기구에 집중되면서 집행위원회의 독단적 조치와 보조금 축소에 반발하는 지방정부 및 도시들 간 협력이 더욱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주요 도시들은 자국의 중앙정부와 무관하게 국경을 넘어 여러 타도시들과 수평적 연합을 형성해 유럽연합의 정책과정에 직접 관여하게 됐다.
한편, 유럽연합도 지방 도시들 간 협력이 주로 대도시들 간에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유럽 지방과 도시들의 법, 제도가 다르므로 협력의 수준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연합은 초국적 차원의 통합된 지방 및 도시들 간 협력정책을 준비 중에 있다. 지방분권은 어떤 경우라도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동시에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 강화로 인한 독자적 권력이 향후 지방정부 고립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지방분권화 이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반드시 심도 깊은 연구를 진행해야만 할 것이다.